39  2015-03-23  2378  
관리자 (관리자)  
  열여섯번째 서예전 산민 이용 선생


▲산민선생이 한국소리전당 전시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안봉주기자


2014-10-22 전북일보 김은정 선임기자


문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노정이 같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야 비로소 제 생명을 얻는다. 기록으로부터 출발한 문자는 시대를 건너면서 그 존재의 가치에 새롭게 눈뜨게 한다. 서예는 그러한 문자가 이루어낸 예술적 성취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옛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고 했다. 당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다던가.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물질문명의 편리함과 속도감이 정점에서 맞닿은 오늘날, 서예의 존재는 무상(?)하다. 일상의 문화로부터 자리를 빼앗긴 서예는 예술의 영역에서 특정계층의 사유물로 존재한다. 어찌 보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일찌감치 서예의 가치에 눈을 떠 삶의 중심을 오롯이 이 문자예술의 영역에 가두어 살아온 서예가 산민 이용 선생(67)에게도 서예의 존재가 무거울까.


전통서예와 현대서예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예의 영역을 넓히고 그 가치를 대중들에게 확산시켜온 그가 열여섯 번째 전시회를 열고 있다(10월 25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1981년부터 2년 간격으로 줄곧 대중들과 만나온 그는 옛 글과 문장이 지닌 철학의 깊이를 문자의 조형성으로 다시 해석해 내놓았다. 전통의 영역은 더 견고해지고 창조의 영역은 더 치열해졌으니 교류와 융합의 미덕이 크다. 사실 ‘옛 것’의 가치에 천착해온 그의 서력(書歷)은 애애초 외형적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고진한 필치가 생동 운필하는 문자향은 소품이나 대작을 막론하고 스스로를 품어 관객들을 취하게 한다.


이번 화두는 ‘선(禪)을 묻다’다. 진중한 화법으로 묻지만 즉답을 구하진 않는다. 대신 작가의 바람은 따로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태를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유는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일깨우는 힘이 있거든요.”


문자의 예술적 성취는 외형에만 있지 않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80년대부터 주목해온 금문(金文)의 조형세계는 단연 압권이다. 법화경을 금문으로 옮겨내는데 걸린 시간만 2년. 천착해온 집념도 그렇지만 산민만의 서체로 생명을 얻은 법화경 금문의 회화적 균형미가 놀랍다.


최근,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자 부집행위원장으로 다시 축제의 현장에 합류한 그를 만났다. 위축되어 있는 듯 했던 서예의 존재가 새로워졌다. 기분 좋은 발견이었다.


-작품의 규모가 놀랍습니다. 근작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몇 점을 제외하고는 최근 작품들입니다. 글씨 쓰는 일이 일상이니 작품을 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금문과 예서로 써낸 법화경이군요. 길이만 해도 200m가 넘는다니 우선 그 노동력이 감탄스럽습니다.
“금문 작업만 꼬박 2년 걸린 작품입니다. 예서는 아직 마무리를 채 하지 못했지만 내놓았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펼쳐놓고보니 보람은 있습니다.”

-물론 2년 동안 이 작품만 써오신 것은 아닐 테지만 그 긴 시간동안 한 작품을 이어내야 하는 공력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예는 같은 호흡으로 써내려가야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 글씨를 써낸 호흡으로 뒷 작업을 이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죠. 그래서 자기 공부는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법화경은 그런 점에서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주제가 ‘선을 묻다’입니다. 답을 주시지 왜 구하십니까.(웃음)
“작품을 하다보면 경향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논어 등 고서에 담긴 글, 인생살이에 가르침이 되는 글귀에 마음이 가닿았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화적인 글 보다는 스스로를 사유하게 하는 글감들에 마음이 가더군요.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禪)적 사유랄까, 그런 글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동적이고 치열해지는 세태와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치열해지는데 그런 정적 사유의 힘에 눈뜨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사유의 가치 발견이 더 필요해지는 것 아닐까요. 자연과 삶을 관조하며 살자고 하기에는 사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많지요. 잘 살아가기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유하면 성찰하게 되고 성찰하면 세상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서예는 옛 사람들에게 일상의 문화였습니다. 오늘에도 그런 문화의 가치가 유효할까요.
“물론입니다. 오늘날 빚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사람다움을 갖추지 못한 환경에 있습니다. 서예는 올바른 인성과 인격을 갖추게 하는데 좋은 바탕이 됩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외면받기 십상이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더 유효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예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서예문화는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서예인구는 정체되어 있습니다.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지요. 예전 한 시기, 유행처럼 번졌던 서실(서예학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교육의 형식이나 주체가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치단체나 대학이 서예교육을 맡고 나섰잖아요. 전국적으로 열리는 공모전이 수백 개에 이르는 것도 그것을 증명합니다.”

-대학의 서예학과가 폐지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인문학이나 순수예술의 위기와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비단 서예만의 문제가 아니죠. 물론 서예가 예전보다 위축된 것은 사실입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서예는 자리를 빼앗겼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설되었던 원광대 서예과의 폐과 확정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근래 들어 아시아 3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서예를 주목하는 경향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서예 부흥을 기대할 수 있는 움직임인가요.
“우리나라만 해도 국회에서 서예진흥법 입법 작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서예진흥운동의 결실이지요. 국회에서 이런 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정치성을 의심하는 분들도 있지만 세계 외교 분야에서는 아시아 3국 뿐 아니라 서예를 외교의 통로로 삼는 예가 늘고 있습니다. 서예는 인문학 부흥과도 직결된 분야이기도 하고요. 서예박물관의 활성화도 눈여겨볼만한 일입니다.”

-아시아 3국 서예문화는 어떻습니까.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서예바람이 대단합니다. 이름 있는 서예가의 작품은 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밀려있습니다. 자연히 서예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나 서예문화의 위상으로 본다면 한국서예가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중국 서예는 역사도 깊고 저변도 넓어 크게 발전할 여지가 있지만 문화혁명의 여파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합니다. 일본 서예는 너무 일찍 서구화되면서 소위 전위서예 같은 형식이 확산되었죠. 너무 앞서가다 보니 서예 본질에서 벗어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비해 한국 서예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서예의 창작 영역을 확대해왔고 그 성취도 높습니다.”

-서예의 대중화는 아시아 3국의 공통적인 과제겠군요.
“물론입니다. 사실 한중일 모두 서예대중화를 주도한 시기가 비슷합니다. 세대로 볼 때도 비슷한 연령층이고요. 6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에 이르는 세대랄 수 있겠는데, 한국 역시 우리세대가 서예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료의 덕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서예문화는 새로운 전기를 얻은 셈입니다.”

-세대의 특성을 더 이야기 한다면 이전에는 완전히 도제식 교육에 의존했었죠. 그래서 임서의 미덕이 가장 크게 부각되었었는데. 그렇다면 선생님 세대에 이르러 글씨의 자기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전에는 서예와 관련된 책도 별로 없어서 스승이 써주는 글씨에만 매달려야 했어요. 공부할 수 있는 통로가 한정되어 있었죠. 물론 오래 공부를 하다보면 자기글씨가 나올 수 있지만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문자향 서권기라고, 그만큼 책(자료)을 섭렵하는 일이 중요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자료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된 우리세대는 행운이었죠.”

-오늘과 같은 디지털시대에 손글씨와 같은 아날로그적 요소가 부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서예문화의 부흥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물론입니다. 손글씨 쓰기는 매우 좋은 교육이에요.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정서에는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직접 손글씨로 쓰는 것이 온전히 내 것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책을 읽다가 좋은 글감을 만나면 지금도 반드시 만년필로 쓰는데, 그 쓰인 형태까지도 기억이 되거든요.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다스려주는 행위라고 봅니다.”

-서예 대중화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80년대부터 현대서예운동을 주도해오셨는데요.
“80년대 중반부터 현대서예 운동이 일기 시작했어요. 현대서예협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더 열심히 앞장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시 전통서예를 찾게 되었어요. 물론 그 사이에도 전통서예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작업의 중심이 변화했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전통이 탄탄해야 비로소 현대서예, 창작의 새로움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서예를 앞세워 너무 쉽게 접근하는 움직임이 보였어요. 기초 없이 글자를 자기 마음대로 해체시키고 조합하면서 예술을 빙자한 근본 없는 작업들이 밀려오는데 겁이 나더라고요.(웃음)”

-금문에 천착하신 것도 그런 경향과 관련이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금문은 청동기에 새긴 문자입니다. 중국의 은나라 주나라시대에 활발했죠. 금문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것이 지닌 회화성 때문입니다. 제가 현대서예를 했던 것도 임서보다 제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서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작업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보니 글자의 원류 쪽으로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겁니다. 문자의 원류에 가까워질수록 회화성이 빼어난 특성을 발견했지요. 제 경우는 금문 속에 답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디서 처음 금문을 접하셨나요.
“고서에서 만났죠. 가슴이 뛸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이 글자가 다 짧은 것들인 거예요. 길어봤자 2-300자. 양에 차지 않았죠. 그래서 중국의 고서와 자료를 섭렵하며 온갖 금문을 모아 연구했습니다.”

-금문을 발표한 것은 꽤 오래전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대서예 운동을 한참 할 때니까 80년대 중 후반쯤 일겁니다. 그때 전시회에 금문을 내놓았더니 반응이 별로였어요. 새롭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좀 이질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컸죠.”

-그런데도 꾸준히 연구하고 재해석하면서 산민의 금문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집까지 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떤 서체도 따라올 수 없는 회화성이죠. 글자의 의미를 새기며 한자 한자 금문체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이 크거든요. 지금은 회화적인 예술성에 주목하는 서예가들이 많아져 보람이 있습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예축제로는 아시아권에서도 처음이었죠.
“그렇죠. 지금은 북경비엔날레가 생겼지만 우리와는 형식 자체가 다르고 권위나 위상도 우리가 우위입니다. 북경비엔날레는 규모는 크지만 전시 중심의 단일 행사거든요. 해를 거듭해가면서 발전하겠지만 서예의 대중화를 겨냥한 축제로서의 의미는 아직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유일합니다.”

-축제는 규모도 중요하지만 외형적인 성장만이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축제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해내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서예비엔날레는 그런 점에서 제 길을 잘 걸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대중화를 위한 현대 작업의 노정도 주목하는 취지를 잘 반영해왔으니까요.”

-10여 년 동안 중심에서 활동하시다가 잠깐 쉬셨죠. 올해 다시 부집행위원장을 맡게 되셨는데 서예비엔날레의 방향이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서예비엔날레가 이룬 성과는 적지 않습니다. 우선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그 성과를 증명합니다. 그렇다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죠. 이 축제를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서예의 대중화는 여전한 과제입니다. 대중들이 공감하고 서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서예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도 그렇고요. 서예비엔날레를 끌어갈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 과제를 풀어내는 일에 힘을 합할 생각입니다.”


산민은 책 욕심이 크다. 한때는 광주의 고서점을 뒤지느라(?)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우리 고서는 물론이고 중국의 고서에 이르기까지 그가 갖고 있는 자료는 엄청나다. 책만도 만권이 넘고 소소한 자료는 그의 서재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왜 그렇게 고서에 집착하는 것인가 궁금했다.


“고전은 오늘의 거울이거든요. 고전을 읽어야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서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특히 고전을 읽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글씨의 형식미가 아무리 빼어나다해도 생명은 가질 수 없습니다. 서예는 진실한 예술이거든요.”


고전에 놓인 길이 어찌 서예의 길 뿐이겠는가. 그가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답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