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2010-12-15  10546  
이용진 (월간 서예문인화 편집장)  
  文翰과 筆墨 사이, 정치함의 극치를 만나다
文翰과 筆墨 사이, 정치함의 극치를 만나다
- 산민 이용, 한국미술관 초대전을 대하는 감회 -

이 용 진
월간 서예문인화 편집장. 한국미술관 기획본부장



예술성이란 무엇이며, 예술의 본령은 무엇인가. 그건 예술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며, 예술가라면 응당 자신에게도 던져보았을 물음이다. 나는 예술가의 창작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습관적인 반복, 소재주의에 빠져 기이함만을 추구하는 행위, 시들어버린 창작 열정, 이러한 것들이 예술가를 좀먹는다.

산민山民 이용李鏞 선생의 서예를 대할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것은 서예의 본질에 대한 자문과 자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샘솟는 창작 열정과 궁구를 발견하기 때문이며, 내적으로 응축시켜 한 걸음 한 걸음 단단하게 디디며 나아가는 그 힘을 작품마다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민 이용 선생은 기본의 힘을 믿는 서예가이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물리치고 오로지 근본이 되는 것만으로 승부하려고 한다. 필묵이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되 힘을 그것 안에서 찾는다. 정면으로 승부한다. 그 필획을 가만히 음미하다보면 얼마나 치밀하게 구상했는가를 알 수 있다. 획 하나 돌려놓을 수 없고, 점 하나 추가할 수 없는 정치한 포치에 놀라움이 뒤따른다. 화려함을 구하지 않는다. 과장된 액션도 없다. 차분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내적 응결의 힘은 가히 놀랍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섬세해 보이는데 막상 맞잡고 힘을 쓰면 끄떡 않는 굳셈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강직함만을 강조하여 경직되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유동하는 액체의 부드러움을 취하되 수은처럼 높은 밀도, 절제된 세련미, 내가 산민 선생의 서예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작가란 우주 변화의 조율자
나는 평소 산민 선생 서예세계의 특징을 몇 가지로 꼽아서 생각해보곤 했다. 그 생각을 밝혀볼 기회이다.
먼저 조화와 질서를 들고 싶다. 이는 점획과 문자가 이루는 세계를 단지 종이 위에 펼치는 조형 예술로만 보지 않고 우주 변화의 조율이라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내디딤과 끌어당기는 보폭에는 면밀한 배려와 섬세한 균형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다스려진 점획은 서로 융화하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나는 산민 선생의 서예에서 비동하는 악樂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엄한 예禮 역시 읽는다. [예기] 「악기편」에서 "악이란 동화하는 것이요, 예란 차별하는 것이다. 동화되는 즉 서로 친하게 되고 차별하는 즉 서로 공경하게 된다. … 성정에 화합하고 용모를 가꾸는 것은 예악의 일이다. … 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움이고 예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질서다. 조화로우므로 만물이 모두 화육되고, 질서가 있으므로 만물이 모두 구별된다."고 하였다.

흥취가 있으면서도 방종에 이르지 않을 정도까지 풀어놓고, 꽉 조이면서도 질식되지 않게 하는 조화와 질서, 균형과 통일성은 엄정한 절제가 있을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필획의 세련미도 언급해야겠다. 산민 서예는 내적으로는 고답적이고, 외적으로는 현대적 세련미의 극치이다. 한문, 한글을 막론하고 정교한 결구는 치밀하게 구도된 후 엄정하게 필획을 끌어냈다. 반면 서폭의 경영은 그야말로 툭 트인 활로를 열기도 하고, 단단히 닫아걸어 응집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금문 자형을 가지고 모필의 자재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다. 산민 서예의 세련미는 글자 간의 호응과 면밀하게 이어지는 연결성의 풍격을 현대적 감각과 정제된 필획으로 구사하는 데 있다. 이는 철저한 자기 통제에서 비롯된다. 흐트러지지 않게 견지하는 내적 통제력은 작품이 넘치지 않으면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경계를 유지시킨다. 현대적 세련미는 다양한 상품 디자인에 적용시켰을 때에도 위력을 발휘한다.

문자향 역시 산민 서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서예 작품과 문자향은 필연적으로 함께 거론되지만 문자향이 배인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서예는 문자를 통하여 일어서는 예술이므로 시문詩文에 대한 공부를 간과하고서는 향취 높은 작품에 이르기 어렵다. 한 자를 쓰든, 장문을 쓰든 이를 피해갈 수 없고, 한 자의 글자일망정 그것의 이면에는 문의 향을 풍기지 않고서는 깊은 예藝를 갖추기 어렵다. 차원 높은 서예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문의 향을 음미한 후 그 맛과 향을 조형적으로 전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할 때 문채文彩와 문향文香과 문미文味와 문성文聲을 담아낼 수 있다.

김병기 교수(전북대학교)는 산민 선생의 열세 번째 전시평에서 산민 서예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널리 배워 익힘의 "박습博習"을 들었다. 매우 적절한 언급이라고 생각한다. [한묵금낭翰墨錦囊](1995, 다운샘)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책이 아니다. 고전을 꼼꼼하게 섭렵하는 과정에서 문한文翰과 필묵의 미味와 향香을 골라 담은 주머니囊인 것이다.

금문 서예 이정표를 세우다
산민 선생의 서예를 얘기하면서 "금문"을 놓고 지나갈 수는 없다. 산민 서예 세계에서 금문金文에 비중을 높게 두어 말하는 것은 한국 서예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른 서체에 비하여 금문 세계에 비중을 더 많이 두어 언급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최근 금문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금문 서예의 부각에 가장 크게 공헌하고 선도한 작가로 산민 선생을 꼽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금문 서예의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는 데 끼친 영향이란 몇 마디 필설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예서시탐隸書試探](1990년, 대흥)을 거쳐 "금문시탐金文試探 시리즈"에 이르면서 본격적인 산민 서예술의 금문시대를 열어젖혔다. [금문천자문金文千字文](1998년, 대흥)과 [소전천자문小篆千字文](1998년, 대흥) 출간으로 시동을 걸고, [7체천자문-금문편](2004년, 서예문인화)과 [금문으로 쓴 채근담菜根譚](2004년, 서예문인화)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금문서예의 미감을 부각시켰다. 이어 [금문으로 쓴 한국한시 삼백수](2006년, 서예문인화), [금문으로 쓴 중국한시 삼백수](2008년, 서예문인화), [명문名文 100선](2010년, 서예문인화)에 이르기까지 2년 간격으로 출간되어 나온 금문시탐 시리즈는 그야말로 금문서예의 교과서적인 역할을 해왔다.

물론 산민 선생 이전에도 금문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들은 있었다. 그럼에도 금문 서예의 분기점을 산민 선생으로 꼽는 것은 금문 서예의 미학적 완성도, 문자학 연구의 심도, 조형미의 극대화 등에서 이전과는 다른 경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측면이 산민 금문의 차별성일까. 먼저 "쓰기書"이다. 금문이 주물로 형체를 갖추지만 그 동기銅器 명문銘文 이전의 획에 초점을 맞추었다. 3천년 시공을 연결하는 산민의 서예는 형체를 그리거나 유사한 모양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게 아니라 그 글자가 지닌 획의 움직임을 쓰고자 하였다.

또한 산민 금문에는 장중함과 숭고함만이 아니라 균형미, 형태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동감動感이 있다. 금문으로 쓴 [채근담], [한국한시 삼백수], [중국한시 삼백수], [명문 100선]과 같은 방대한 작업은 교과서적 엄정함과 문장을 이루는 통일감 유지에 주력하였다. 그러면서도 기맥이 통하고, 시와 문장 속에 갖추어진 리듬과 운율이 끊어짐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한 것이다.

금문은 조상이나 왕후의 공적을 칭송하는 내용, 혹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청동기라는 기재체를 사용함으로써 중후하면서도 화려한 면모를 지닌다. 금문은 숭고함을 기리고 숭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고 하나 문장을 이루는 그 속에는 일정한 흐름과 균재미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도외시하고서 금문을 본다면 필경 한 측면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금문 세계 진면목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는 그림에 가까운 은대와 주대 초기부터 서주에 이르기까지 금문의 서체 연구와 문자학 연구가 깊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산민 선생의 문자학 연구는 경이롭다. 금문 자형 전체를 관통하며 각각의 시기적 특성을 읽어내고 생성과 소멸, 변화와 전환을 파악해냈다. 금문은 3천년 전의 문자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국한된 문자가 아니요, 현재에서도 살아 꿈틀거린다. 당시 서사자들이 혼신으로 기록한 문자가 예술성과 현대적 세련미를 갖추어 생생하게 재탄생한 것이다.

서예의 매력은 문자를 의사소통과 기록 수단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미를 획득하였다는 데 있다. 그러나 다른 조형미와의 차이는 형상미에 국한되어 머물지 않고 형상미 안에 사의성을 담아냈다. 그러므로 문사철文史哲을 담지 못한 서는 외적 형상에만 매달린, 결국 심원함과는 거리가 먼 글씨가 되고 만다. 산민 선생의 서예작품 전체가 그러하듯이 금문에 시문의 향기를 더하였다. 씨줄로는 한중 역대 시문을 종주하고, 날줄로는 금문의 조형미를 담아냈다.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엮으면서 펼쳐내는 금문 서예의 향기는 깊고도 그윽하다.

금문에 "행기行氣"를 불어넣다
산민 선생이 금문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석고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부터이다. 소전小篆의 기초가 된 석고문의 우아하고 두터운 풍격에서 보다 문자 근원적 미감을 찾아 석고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상대商代 중후기 청동기 화문花紋이나 명문銘文, 주대周代 초기의 도상문자, 화폐문자 등 대담하고 화려한 풍모의 회화성 강한 청동기 명문을 연구하면서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시원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금문에 매혹된 것일까. 동기상에 주조한 서주 금문은 갑골문에 비하여 보다 정제되어 있고, 원圓 속에 방方이 있어 획에 풍요로움을 더한 점이 관심을 끈 것이 아닌가 싶다. 서예에 있어서 서사형식은 필수불가결하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의 심화, 탈피, 모색, 승화의 궁구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표정을 지니면서도 문자의 원시성을 내포한 금문은 작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녔을 것이다.

산민 금문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행기行氣"이다. 금문은 그림의 요소가 강하게 배어 있고, 속도 역시 상당히 떨어졌다. 금문에 동감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행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 변화로 힘과 속도를 표현하였다. 정지停止 속에 율동이 있고, 지속遲速 안에 동세가 있다. 외형에 국한되어 모양을 갖추기에 급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문을 쓰되 동기에 주조된 글자가 아니라 명문 획의 특성에 주목하였기에 갈필渴筆과 발묵發墨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당 금문자를 불러내는 데 막힘이 없어야 한다. 망설이고 주저할 때 행기는 멈춰서고 만다. 따라서 금문을 깊게 꿰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형을 구현하는 데서 기를 펼쳐나가는 데 이르기까지 공부가 어떠했는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문자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고, 변화된 금문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체득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산민 선생 금문의 기氣는 고였다가 흘러가며 움직인다. 일방향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세 속에서 보補와 견牽을 함께 내포한다. 경중輕重과 방원方圓, 곡직曲直과 지류질삽遲留疾澁이 자유자재하다. 특히 고습枯濕의 먹색은 선명한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형태미와 율동미가 어우러진다.

산민 금문의 이러한 특징을 장점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필획과 각 글자 간의 호응, 곧 연관連貫을 잘 지닌다는 점이다. 평정平正, 균칭勻稱, 참치參差, 연관의 어우러짐, 그리하여 자연스러우면서도 불균형 속에서 균형미, 균형 속에서의 불균형, 정停 속에서의 동動, 동 속에서의 정, 느림에서 얻어지는 빠름 등 대립 요소들이 조화로운 것은 바로 선과 점, 글자가 어우러져 문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최적의 상태를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산민 선생의 작품들이 지닌 조화로움은 각 글자들이 동떨어지지 않고 강한 결속력으로 하나의 작품 안에서 제각기 자유롭지만 또한 통일성, 긴밀성을 유지하는 데 있다. 웅장한 리듬 속에 완벽한 조화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금문시탐의 결정판이라고 할 [명문 100선]과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에 대하여 작가는 "금문시탐을 시작한 이래 내외적으로 변모의 깊이를 더해왔다."고 술회하였다. 나는 이를 형태미의 변모뿐만 아니라 금문에 대한 이해도의 숙성이라고 받아들였다.

내적 비움, 그리고 또 다른 채움
산민 선생의 금문은 서주를 현재로 끌어내온 금문이다. 변모와 심미의식의 궁구를 통하여 금문의 미적 특징을 필획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따라서 산민 선생의 금문은 청동기 명문銘文보다는 주조를 위한 틀에 가깝고, 모필서사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다양한 기법과 변화가 일어나고 변화와 조형적 자유로움과 세련됨이 드러나게 된다. 금문 당시의 웅후하면서도 고박스러움을 충분히 취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기 명문의 금문 특징이 모필의 특성과 융합하면서 독특한 "산민 금문체"로 정착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산민 금문 서예는 모필 서예미를 내포하면서도 금문적 특징을 구현해낸 특별한 경우라고 하고 싶다.
고대 자미字美의 예술적 승화는 완벽한 외형적 재현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심미적 요소를 작가의 내적 관점에서 이끌어내는 것이다. 굳이 베르그송의 "창조적 발전은 능동적이고 생동하는 힘과 타성에 사로잡힌 물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싸움의 결과물"이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예술 창작은 이러한 대립 상황 속에서 창조물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닌가.

예술의 세계에는 시종始終이 없다.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와 전환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볼 때 산민 선생은 지금 하나의 정리와 전환을 이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작품은 "허虛"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작품상의 빈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내적 비움"에 더 가깝다. 그동안 작가는 한국 서단의 중추적 위치에서 많은 기획을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일들을 수행해왔다. 이제 비워내는 지점에 스스로 서려는 것이지 싶다. 지난해에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내년에는 전주대 겸임교수에서도 퇴임한다.

비움이 채움이고, 채움이 비움이라는 전轉과 환換의 경로에서 작가는 자신 전체를 또 떠밀고 나아갈 것이다. 새로운 "시탐試探"을 전개할 것이다. 작가란 스스로 없는 문을 만들고 무문 안에서 수행에 든 사람이다. 스스로 만든 창작이라는 형틀을 평생 벗지 못하면서도 찬란한 환희심에 들 수 있는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산민 서예의 허와 공은 진연塵緣의 떨침이기도 하고, 불순물을 제거한 내적 정결, 단순함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법일 수도 있지 싶다. 단순함이란 다른 색이 섞이지 않는 생사生絲 곧 순정함이다. 예술미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순정함의 표출이다. 그러나 대채로움이 섞이기 이전의 상태에 인위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만만한 수련으로는 불가하다. 한 번 맛본 잡미雜味를 내려놓고 순미純味로 돌아가는 일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잡미를 제거하는 과정 없이는 도달하기 어렵다.

산민 서예, 守中하는 절제와 현대적 미감
산민 선생은 거시적 통제 능력을 타고났다. 큰 시스템을 구축하고 각 부분이 작동하도록 이끈 추동력은 그대로 서예 작품에도 나타난다. 한시 삼백 수 전체를 마치 한날한시에 쓴 것처럼 이끌고 가는 힘은 웬만한 기세가 아니고서는 불가하다. 그러면서도 작고 작은 데까지도 소홀하지 않는 세밀한 눈도 가졌다.
완성된 글씨는 쓰기 이전, 쓰는 과정, 쓴 이후를 추론하고 상상하게 해준다. "보는 눈"은 언어와 형식의 가치를 깨닫는 일이다. 그리하여 "쓴 것(written)"에서 "쓰는 것(writing)"을 엿보는 일, "쓰는 것"에서 "쓴 것"으로 나아가는 그 신비로움과 현묘함을 느끼는 일, 나는 모름지기 눈 밝은 감상자가 되려면 "씀"과 "쓰는"의 양자적 관계에서 느끼는 감동을 잡아챌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엄한 법도를 유지하는 것이 단지 서체의 특성 때문일까. 그렇다면 삼엄한 법도 속에서 변화와 자유함을 풀어주는 능력을 뭐라 할 것인가. 나는 양적 팽창을 안으로 거두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산민 서예에서 산散과 발發을 거두어 수중守中하는 절제와 현대적 미학을 보았다. "씀"과 "쓰는" 사이, 그 정치함의 극치를 말이다.

이 글에는 초대전을 기획하고, 작품집과 [명문 100선]을 책임편집하면서 발표에 앞서 조금 일찍 맛본 혜택자로서의 감회 역시 담겨져 있다. 그러면서도 깔끔하고 절제되어 군더더기를 허락하지 않는 산민 선생의 서예 작품에 군말을 더한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선생의 작품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나는 그러한 선생의 작품에 이음새의 솔기가 다 드러나는 깁고 기운 문장으로 감상후문感想後文을 더하니 무안할 뿐이다. 누累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